Arven(Pokemon SV)

20240727 - 맛없는 요리

마야マヤ 2024. 7. 27. 22:57

●X(구 트위터) @YUMELAND60min 드림전력 참가작

●포켓몬스터SV - 페퍼 BL로맨스드림 (페퍼엑스)

●NPC × 메타픽션 주인공

●주제: 맛없는 요리

 

달그락, 테이블에 맞닿은 컵이 세밀한 소리를 냈다.

 

 

 

"페퍼의 요리가 맛없었던 적... 이요?"

"응."

 

끔뻑 끔뻑, 암전을 반복하는 칠흑 눈동자. 엑스는 의아한 기색이 역력한 반면, 질문자인 페퍼는 한껏 진지한 얼굴로 엑스의 대답을 기다린다. 양손에 각각 펜과 수첩을 든 채로. 언제 입을 열어도 총알같이 받아 적을 기세로.

 

"답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게 왜 궁금한지 먼저 알고 싶어요. 꽤나 주관적인 질문이니까, 그 의도를 알아야 더 적합한 답을 낼 수 있겠네요."

"그게... 요리사가 되는 데 참고하고 싶어서. '맛있는 음식'은 선례가 많지만, '맛없는 음식'은 뭔가 명확하지 않다고 할까... '맛있다'도 '맛없다'도 사람의 수만큼 있을 테니 양쪽 다 공부해두고 싶어."

 

머뭇대면서도 내놓은 답. 거짓은 아니다. 때로 '비전의 요리사'라 수식되는 페퍼인 만큼 요리에 대한 관심은 진심이다. 그저 의도가 그것만이 유일무이는 아닐 뿐. 좋아하는 사람의 입맛을 알고 싶다는, 서투른 애정이 살짝 끼어든 건 페퍼 혼자만의 비밀이다.

 

"그런 거였군요. 으음... 페퍼의 요리가 맛없었던 적이라..."

 

작게 고개를 끄덕인 엑스는, 이윽고 제 입가를 매만지며 게슴츠레 눈을 내리감는다. 그믐달을 모방하는 눈가. 그게 엑스가 골몰할 때의 버릇인 걸 알기에 페퍼는 덩달아 마른침을 삼킨다. 질문한 건 페퍼 자신. 대답을 바라고 제 의지로 내민 질문. 그렇다고 긴장하지 않을 방도는 없잖는가. 혹여 최악의 답이 돌아온다면? 오히려 맛있었던 적을 새는 게 더 어려웠다면? 실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제까지 공들인 악식이나 주고 있었다면? 가속하고 가속하며 몸집을 불려가던 불안은,

 

"전혀 없었어요."

 

그 크기가 무색할 만치 간단히 소멸한다. 예고도 없이 떠오른 단 하나의 명쾌한 목소리로.

 

"......없었어?"

"네, 없었어요."

"정말로? 한 번도?"

"정말로, 한 번도요."

"...나 배려한답시고 그러는 건 아니지?"

"이런 데서 하얀 거짓말을 하면 도리어 페퍼에게 실례가 될 거라 생각해요."

 

반사적으로 늘어서는 논리정연한 문장. 확신과 진심이 기반해야만 일어나는 현상. 어느샌가 만월처럼 드러난 양눈은 올곧게 페퍼를 비춘다. 어벙하게 마냥 엑스를 마주하는 페퍼. 이어지는 엑스의 목소리가 온화하다.

 

"페퍼의 요리는 객관적으로 맛있기도 하고... 내게 '맛없는 요리'란, 불편한 마음으로 먹는 요리... 란 이미지가 강해서요."

"불편한 마음?"

 

간신히 이성을 불러들인 페퍼. 엑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무조건 칭찬해야 하는 초밥이나, 아픈 걸 감추고 애써 씹는 스테이크요. 식사가 고문처럼 느껴져서요. 하지만 페퍼의 요리는 어느것도 그렇지 않았어요. 괴롭지 않았어요. 입에 맞지 않는다고 말해도, 아파서 못 먹겠다고 말해도 화내지 않을 테니까요."

"...그랬구나."

"네, 그랬어요. 아, 설마 남기면 화내려 했나요?"

"그, 그럴 리가! 절대 아니야! 억지로 먹다 체하면 안 되잖아!"

 

장난기 서린 질문. 허공에 양팔을 붕붕 저어가며 부정하는 페퍼. 기대하던 반응이었기에 엑스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린다.

 

"그래서 내게 페퍼의 요리는, 맛없기가 더 힘들어요."